본문 바로가기
칼럼 & 사설 & 인터뷰

돌연사 공포가 내 몸을 무너뜨렸다 - 2021-08-04 11:46 한겨레S

by pockey 2021. 9. 29.

[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멜랑콜리아형 우울증

 

남편 사망 이후 트라우마 민자씨

체중 크게 줄고 즐거움도 못느껴

정신 치료받고, 신체도 회복해야

의지할 지인, 의사 찾는 게 필수

 

자씨는 혼자 산 지 1년이 된 65살 여성입니다. 작년 여름의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자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일어났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꼼짝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자씨가 아무리 남편을 흔들어도 반응도 없고 눈도 뜨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남편은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계속 치료를 받아왔지만 비교적 건강한 편이었습니다. 119에 연락해 인근 대학병원으로 정신없이 달려갔지만 남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마치고 집에 오니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집 안이 낯설어 보였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출가를 해서 바쁘게 지내고 있고,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주민들이 있었지만 남편 이야기가 나올까 부담스러워 사람과 만나는 것이 싫어지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신적 충격이 트라우마로

 

 민자씨는 어느 날 자다가 몸에 차가운 것이 닿는 느낌이 들어 소스라치게 놀라 깼습니다. 하지만 침대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사망한 그날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왼쪽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남편처럼 자신도 심근경색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심장에는 문제가 없었고 다만 혈압이 조금 높았습니다. 남편이 고혈압이었던 기억이 떠올라 민자씨는 매일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게 되었습니다.

 

민자씨는 하루에도 열번 이상 혈압을 재는데, 그때마다 들쭉날쭉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140/80 이상으로 높게 나왔고 어떤 경우에는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혈압약을 복용하자 오히려 저혈압이 되어서 앉았다 일어서면 핑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지나치게 혈압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멈추기 힘들었습니다. 혈압이 많이 오르면 다시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고 그때마다 자식들에게 급히 연락하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도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지만 응급실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민자씨는 아침이 되면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 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마치 에너지가 방전된 것 같고 끼니도 거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자더라도 하루 두세시간밖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을 자주 꾸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꿈에서는 주로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남편이 나오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을 깨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집을 찾아온 큰딸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꼼짝도 안 하고 누워 있는 민자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해 진찰을 받았습니다. 체중이 45㎏으로 평소 체중보다 10㎏이나 빠져 있었습니다. 민자씨는 식욕이 전혀 없었고 밥을 먹으면 모래를 씹는 것 같았습니다. 기억력은 다소 저하되어 있었지만 치매는 아니었고 집중력이 떨어진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검사를 통해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으로 진단받았습니다.

 

배우자가 오랫동안 지병이 있거나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사망하게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트라우마가 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의 사망을 직접 목격하거나, 갑자기 경험하게 되는 경우에는 큰 트라우마가 되고 심한 경우에는 재경험, 과각성, 회피 등의 경험을 나타내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민자씨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이로 인해 혈압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건강염려증 경향을 보였습니다.

 

건강회복 노력과 의지할 곳 찾아야

 

민자씨에게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영양을 공급해 적정 체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식사를 바로 하기가 어려워 액상 형태로 된 일반 영양식을 먹었습니다. 체중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집 안이나 밖에서 걷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활동량이 떨어지면 팔다리의 근육이 위축되어 더 걷기가 힘들어지고, 근육 위축이 심해지면 넘어져서 골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민자씨는 트라우마로 인해 혈압을 잴 때마다 지나치게 걱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혈압이 높게 측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혈압은 동네 내과를 방문할 때만 측정을 하고 주기적으로 혈압, 당뇨, 고지혈증 관리를 받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 믿고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을 때 트라우마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일상을 되찾게 됩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내과 선생님도 큰 도움이 됩니다. 담당 의사를 정하고 신뢰하면서 꾸준히 진찰받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들은 주말에 민자씨와 함께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함께 하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시간을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민자씨는 우울증에서 회복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백화점과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활동에 참여해서 봉사활동도 하고 붓글씨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편을 대신해서, 자신과 함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주고 있습니다.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5987.html#csidxe1508548994ba1a892ecc45845ff991

 

돌연사 공포가 내 몸을 무너뜨렸다

[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멜랑콜리아형 우울증남편 사망 이후 트라우마 민자씨 체중 크게 줄고 즐거움도 못느껴정신 치료받고, 신체도 회복해야의지할 지인, 의사 찾는 게 필수

www.hani.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