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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설 & 인터뷰

뇌출혈 이겨낸 줄 알았는데 멈추지 않는 분노 '뇌연화증' - 2021-08-16 00:15 한겨레S

by pockey 2021. 9. 29.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뇌연화증

사고로 뇌출혈 일으켰던 영철씨
외상은 나았으나 분노조절 안돼
이마 부딪치며 뇌조직 붕괴된 탓
극단 치달아 심각한 문제 낳기도

 

뇌출혈 환자 가운데 사고 당시 흘러내린 혈액이 뇌 조직을 사멸·붕괴시키는 뇌연화증을 겪는 사례가 있다. 분노 같은 감정이 억제되지 않는 충동조절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영철씨는 정년퇴직한 지 2년차가 된 62살 남성입니다. 평생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문제는 3개월 전에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면서 발생했습니다. 영철씨는 보도블록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고 피를 흘리면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걱정스럽게 자신을 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정도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니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뇌출혈 사고 뒤 다른 사람처럼 변해

 

영철씨는 다행히 골절은 없었지만 뇌내출혈이 발생했습니다. 이마를 땅에 부딪치면서 전두엽 내 출혈이 발생한 것입니다. 신경외과 진료를 받았지만 수술할 상황은 아니었고 출혈이 멎을 때까지 안정하면서 입원해 있었습니다. 다행히 출혈은 잘 멎었고 일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두통과 어지럼증 같은 신체 자각 증상도 차츰 없어졌고 팔다리 움직임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영철씨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다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항상 조심하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철씨는 사고 이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다른 차가 앞으로 끼어들면 심한 분노가 차올라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동승자들이 놀라 싸움을 말리는 일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앞사람이 새치기를 하자 갑자기 큰소리를 질러서 줄 서 있던 사람들이 놀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보기에 영철씨가 분노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철씨는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고 질서를 지키지 않고 끼어든 사람들이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전보다 목소리도 무척 커져서 가족들도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조마조마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결국 큰일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영철씨가 아파트 윗집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윗집에서 나를 괴롭히는 것을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길로 영철씨는 윗집으로 올라가 발로 문을 차고 당장 나오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결국 윗집 사람과 말싸움을 하게 되었고 온 가족이 나가서 말리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현행범으로 파출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파출소에 가서도 함께 간 윗집 주민에게 고함을 지르는 통에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서에 여러번 출석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가족들이 나서서 사과를 해서 겨우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조용히 지내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전기매트를 엄청나게 많이 사서 뜯지도 않고 방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영철씨가 외출할 때 몰래 따라가보니 상가에 물건을 쌓아놓고 노인들에게 전기매트를 파는 다단계 업체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영철씨는 자신에게 할당된 수량을 채우느라 매트를 구입했던 것이었으며, 다단계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었습니다. 평소 조용하고 물건 구입에도 신중한 편이었던 영철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뇌연화증은 충동 억제를 막아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어렵게 만든다. 우울감이 높아지고,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극단 상황으로 진행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외상 뒤 뇌 조직 붕괴, 극단 치달아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고 진료받을 필요가 없다는 영철씨를 가족들이 간곡하게 설득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영철씨는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충동성이 매우 증가한 상태로 간단한 검사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틀렸습니다. 검사가 잘 진행되지 않자 검사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검사 소견에서 치매는 아니지만 주의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있었고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영철씨가 보이는 이 충동조절장애는 3개월 전에 뇌출혈이 있을 때 찍은 사진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었습니다. 전두엽 중에서도 눈 뒤쪽의 안와전두엽에 출혈이 있었습니다. 다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촬영해보니 출혈된 부위의 혈액이 흡수되면서 뇌연화증이 발생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뇌연화증이란 뇌졸중, 뇌의 외상 등으로 뇌의 특정한 부위에 혈액이 흐르지 못해서 뇌 조직이 사멸·붕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철씨는 넘어지면서 이마를 부딪쳐 그 충격으로 안와전두엽에 뇌연화증이 발생했습니다. 안와전두엽은 뇌의 중심에 있는 변연계와 직접 연결되어 변연계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과 상황에 맞게 조절하여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도록 돕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이 때문에 안와전두엽이 망가지면 분노 조절이 안 되고 매너가 없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결국은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당하면서 우울해지고 자존심도 바닥으로 떨어지는 극단 상황으로 진행되게 됩니다. 

 

영철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고 층간소음에도 자극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케이크를 들고 가 위층 주민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도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어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다단계 업체에서 구입한 전기매트도 모두 직접 환불했고 다시 그곳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영철씨가 이전에 머리를 다친 것 때문에 충동조절장애가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제는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7700.html#csidx887a1c122fbf846bc1e9e8c11e6bee1

 

뇌출혈 이겨낸 줄 알았는데 멈추지 않는 분노 ‘뇌연화증’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뇌연화증사고로 뇌출혈 일으켰던 영철씨외상은 나았으나 분노조절 안돼이마 부딪치며 뇌조직 붕괴된 탓극단 치달아 심각한 문제 낳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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