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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사설 & 인터뷰

정신분열병이 조현병으로 바뀐 까닭 - 2014.03.07 경향신문

by 마이멘탈포켓 2021. 9. 29.

정신분열병이라는 명칭이 주는 느낌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병이라는 느낌을 준다. 정신이란 말은 그다지 부정적인 느낌이 아닌데 분열이라는 단어는 절망적이다.

 

정신병, 정신분열병, 정신과 등의 단어들이 자주 몰려다니다 보니 엉뚱하게 정신과는 정신병, 정신분열병환자가 다니는 진료과(사실 맞지만)이니 여기에 다니다 보면 스스로 정신병환자, 정신분열병환자로 오인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신과에 내원하는 환자들마다 이런 불만을 말한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편견이 없어지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환자입장에서도 답답하고 공감대가 부족한 말로 느껴지겠지만 사실 말하는 의사도 맥이 빠진다.

병에 대해 모르는 사람, 병을 앓지 않거나 주변에 환자가 없어 실상을 모르는 사람이 뭐라 하든 별 영향이 없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분열병이라는 말은 ‘그러다 좋아진다’ 라든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야말로 낙인찍듯이 사회에서 한쪽 구석으로 몰아가 영영 회복할 수 없는 불명예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정신분열병의 영어명칭인 ‘Schizophrenia’는 1908년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정신과의사에 의해 제정됐다. 그는 이 명칭을 주장할 때 이전의 ‘조기치매 (Dementia praecox)’라는 명칭처럼 절망적인 병이 아니라는 면을 전달하기 위해 희랍어 어원을 동원해 작명했다.

 

정신분열병은 Schizophrenia를 그대로 해석해 한자로 번역한 일본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2002년 정신분열병 명칭을 개명해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으로 바꿨다. 일본은 이를 통해 환자에 대한 편견감소, 병명고지와 환자동의에 의한 치료증가 등 치료효율성과 환자인권신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조증이란 단어도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병이 잘 낫지 않는 불량한 경과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다른 정신질환의 경우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처럼 정상과 다르게 변화된 상태만을 나타낸다.

 

2007년 가을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인터넷 정신분열병환자 가족동호회에서 무려 3689명이 서명이 담긴 ‘정신분열병 병명 개정을 위한 서명서’를 대한정신분열병학회로 보내왔다. 관련 단체의 빠짐없는 참여로 힘을 얻어 정신분열병병명개정위원회를 조직해 결국 3년6개월 동안의 노력으로 ‘조현병(調絃病)’이라는 명칭이 탄생했다.

 

무엇보다 독자적이며 병명에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를 넣지 않고 질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병명이다. 여기에는 국어국문학자의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주요했다고 한다. ‘조현’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것을 말하는데 이처럼 신경계나 정신의 튜닝(tuning)이 잘 안된 상태라는 느낌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즉 분열이나 실조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파국적인 상황이 아닌 다시 튜닝하면 된다는 치료의 희망을 내포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조현병으로 명칭은 개정됐고 학회 이름도 대한조현병학회로 바뀌었다. 꾸준한 홍보로 새로운 명칭이 활발하게 사용돼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글도 여기에 한 몫 거들었으면 한다. 오랫동안 사용돼온 명칭을 바꾸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병으로 아파하고 사회적 낙인에 상처받는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면 크나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헬스경향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준호 교수>

 

https://m.khan.co.kr/life/health/article/201403071531392#c2b

 

[건강칼럼] 정신분열병이 조현병으로 바뀐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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