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을 포함한 정신질환도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빨리 치료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치료 결과가 정해집니다. 정신질환이 조기발견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를 위해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요. 아울러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야 한고, 관련한 불편함이나 어떠한 불이익이 주어져서는 안됩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60·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은 12일 “국민의 스트레스는 증가하고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해체되는 상태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지 않으니 정신건강의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신건강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회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권 이사장은 “올해부터는 국민정신건강소통위원회를 발족하여 사회와 국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또 한층 더 깊게 다가갈 예정”이라며 “이 위원회는 우리 학회 차원의 행사나 활동에 그치지 않고 여러 사회단체, 정부기관, 국회, 사법기관, 언론기관들과 함께 힘을 모아가겠다”고 강조했다.
권준수 이사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국내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점과 국가사회적인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신경정신의학회는 현재 4200여 명의 정회원과 전국 22개 지부학회, 산하의 23개의 연구학회를 두고 있는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전체를 아우르는 본 학회이다. 권 이사장은 학회 본연의 학술활동과 더불어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일, 정신과 의사가 사회적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신건강의학분야의 종주 학회인 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으로서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두고 계십니까.
“일반인에 대한 정신질환의 지속적 교육을 통한 정신질환의 낙인 없애기 운동과 소외계층에 대한 정신과 진료 제공(다문화가정, 탈북자, 미혼모 등에게 정기적인 진료활동)을 통한 국민들의 정신과나 정신과 의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에 주력해 왔습니다.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으려는 뜻입니다. 또한 학회 내 윤리강화와 자정작용을 통하여 정신과 의사가 사회적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윤리위원회 역할 증대, 규정 개정, 윤리교과서 출판, 전문의 시험에 윤리문제 출제 늘리기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고요. 실제 학회 사상 처음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한 회원을 제명했습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을 고려한 미래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재정비하는 전공의 수련 및 고시 시스템 개혁 작업이 현재 진행 중입니다.”
―국민의 정신건강이 ‘빨간불’입니다.
“우리만 독특한 것은 아니고 선진국에서 이미 경험해온 문제라 생각합니다. 산업화로 스트레스는 증가하는데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족과 같은 공동체는 해체된 상태에서 의료와 복지서비스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지 않으니 정신건강의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겪어왔기 때문에 더 심각하게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시 빠른 속도로 정신건강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회적 변화가 시급합니다.”
―현실 진단과, 학회 차원에서 어떤 대응방안을 갖고 계신지요.
“국민의 4명중 1명은 평생 동안 한번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등, 정신질환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한국사회는 자극이 너무 많은 과잉 스트레스상황입니다. 학생들은 항상 입시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젊은 사람들은 N포 세대(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이나 결혼뿐 아니라 더 어러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 중년들의 우울증, 노인 치매의 증가, 자살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각종 사고 등에 의한 트라우마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 작업이 시급합니다. 저희 학회에서 201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정신건강박람회를 비롯한 각종 캠페인 등은 국민 인식개선 활동의 일환입니다. 작년에는 회원들이 직접 참여해서 발행하고 있는 정신의학신문과 네이버의 협업으로 마음건강 코너를 만들어서 올바른 정신의학에 대한 콘텐츠를 배포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들이 정신질환을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보도하는데, 저희 회원들이 이런 부분을 바꾸기 위해 직접 뛰어든 것입니다.”
―정신질환이 소아청소년기부터 발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만성정신질환의 75%는 25세 이전에 발병하고 절반은 15세 이전에 발생합니다. 20대 전후 청년들의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요. 청년 시기의 전체 질병부담 중 50% 이상이 정신건강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청소년과 청년시기부터 정신질환에 대한 조기발견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체질환처럼 정기적인 정신건강검진도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권 이사장은 “성폭력과 재난안전교육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예방교육이 모든 학교, 직장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느 “건강검진을 받을 때에도 정신건강전문가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국내에서는 이미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는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권준수 이사장이 지난 1월 2일, 외래 진료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임세원 교수의 빈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함께 재발방지책에 대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세원 교수의 안타까운 희생을 계기로 학회 등에서 ‘임세원법’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데요.
“소위 ‘임세원법’은 큰 틀에서 2가지 측면, 첫째 병원 내 폭력을 없애고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 둘째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 철폐와 낙인없이 자유롭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구축의 2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 첫번째, 병원내 폭력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병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고, 정신과 환자들의 경우는 병의 증상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적절한 치료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년 1월말 현재 현재 28개의 임세원법이 발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윤일규 의원의 사법입원제도에 대한 법과 신상진 의원의 정신과적 응급상황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법안 등이 중요한 법안이 될 듯 합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큽니다.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편견은 대개 미디어나 부모나 동료 등을 통한 사회적 학습의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수집이나 정보 처리 과정 없이, 적대감이나 혐오 등의 부정적 정서를 동반하여 평가하고 이에 더해 차별적인 행동까지 행해지게 됩니다. 우선은 올바른 정신건강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정신건강 정보가 문제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적절한 정보를 꾸준히 알려야 합니다. 정신과 학회지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국내 주요 일간지의 정신질환 관련 기사 중 약 70%가 사건사고 기사였고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도되었습니다. 반면 객관적인 의학정보를 담거나 긍정적 측면에서 기술한 기사는 15% 미만에 그쳤습니다.”
권 이사장은 “실제로 정신질환자를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현저히 낮다”면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교정될 때 정신질환의 조기치료가 가능해지고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한 제언을 해 주십시오.
“어떤 문제든 쉽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상담을 받거나 도움을 받았으면 합니다. 재작년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즉 사회적 관계망 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보고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국민 누구나 특정한 시기에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덴마크의 행복연구소에서는 ‘행복을 위해서는 정신건강을 말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정신건강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어디서든 드러내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국민정신건강실태조사를 보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정신건강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신건강상의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등 3가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신과에 대한 편견, ‘치료 받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었다’는 사실상 다음 문제로 나타났다. 이는 정신건강에 대한 낮은 인식과 안일한 태도, 낮은 경각심 등이 정신건강 문제를 방치하는 가장 큰 장벽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 이사장은 “일상생활에서 너무 조급하게 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유있는 삶의 태도, 다른 사람과 비교보다는 자신의 삶의 철학과 가치에 의해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또한 규칙적인 생활, 규칙적인 운동, 금연 및 과도한 음주 피하기, 그리고 평소 스트레스 관리, 긴장이완훈련(요가, 명상 등) 등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조언했다.
권 이사장은 “정신건강 문제의 조기발견과 조기 집중치료 시스템 확립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의료정책 부분에서 문제점이나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영국에서 10년간 사용해온 표어가 ‘건강한 마음 없는 건강은 없다(No health without Mental Health)’ 입니다.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이 최소한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조현병,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는 전체 의료비의 15%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는 심장병이나 암의 치료비와 비슷한 수준인데, 정작 의료재정의 불과 1.5%만이 정신건강분야에 할당되고 있는 실정입니다(OECD 국가 평균 5.05%). 국가적 차원에서 정신건강문제 관리를 위한 의료재정과 연구분야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의 조기치료와 회복이 촉진되면 의료비의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이는 오히려 경제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정신건강에 대한 투자는 시급합니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이에 걸맞는 국가의 투자는 여전히 미비하다. 권 이사장은 “정신건강문제의 조기발견과 조기집중치료, 의료기관과 지역사회 정신보건기관의 연계와 협력, 병원 기반 정신사회적 서비스의 확대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건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투자는 모두의 평안하고 건강한 삶으로 돌아올 것이므로 복지임과 동시에 가장 경제적인 투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환자들 중 신체질환과 정신질환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고, 만성신체질환(암, 고혈압, 당뇨 등)의 대부분이 정신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환자 중 우울증상을 치료하면 암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심근경색환자나 고위험자 중 우울증을 치료하면 심근경색 발생이나 재발이 일어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이처럼 신체질환에서 스트레스 관리나 정신질환의 치료가 질환 자체의 예후(질병의 경과에 대한 예측 및 결과)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병원, 예를 들어 300병상 이상에는 필수적으로 정신과를 두어야 하는 규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신체질환에 동반되는 정신질환을 같이 치료할 수가 있어 질 높은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권 이사장은 “정신건강에는 너무나 다양한 직종들이 관련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대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직속으로 (가칭)정신건강발전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면 효율적으로 정책이 펼쳐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권준수 이사장 주요 약력
서울대 의대 졸업, 미국 하버드대 연수, 서울대병원 홍보실장·미래전략본부장·교육인재개발실장, 서울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 한국인지과학회장, 대한불안의학회장,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이사장, 국제신경정신약물학회 평의원, (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대한뇌기능매핑학회장·서울대 의대 인간행동의학연구소장·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
https://m.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1902130918001#c2b
'칼럼 & 사설 &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는 팬데믹(pandemic)이 아니라 신데믹(syndemic)이다 - 2021.05.28 서울대학교 (0) | 2021.09.29 |
---|---|
[세상읽기] 조커, 무관심이 낳은 우리시대의 '괴물' - 2019.11.08 11:20 헤럴드경제 (0) | 2021.09.29 |
권준수 이사장이 밝힌 정신과 대책 "기승전, 수가" - 19.11.07 05:45 Medical Times (0) | 2021.09.29 |
“조현병 환자의 진짜 권익은?” 외쳐온 세계적 뇌의학자 - 2021년 6월 14일 09:28 코메디닷컴 (0) | 2021.09.29 |
“마음 불안이 일상 불편함 초래한다면 ‘치료’받으세요” - 2021년 07월 26일 ECONOMY Chosun (0) | 2021.09.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