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재난탈출 영화 '엑시트'에서는 용남(조정석 분)이라는 청년백수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실패로 집안에서 눈칫밥만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칠순잔치 도중 유독가스가 피어올라 일대혼란에 휩싸이자 용남은 모든 체력과 기술을 동원해 가족의 탈출을 향한 기지를 발휘한다. 이 영화에서와 같이 재난이 있을 때는 우리 곁의 소시민은 영웅으로 나타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의료진, 자원봉사자, 공무원, 그리고 수많은 성금기부자까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우리 시대의 작은 영웅들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돕는 행위를 이타주의라고 한다. 성숙한 방어기제 중의 하나다. 정신분석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자아는 불안을 처리해 마음의 평정을 회복시키는 노력을 한다. 이를 방어기제라고 부르며 대부분 무의식 수준에서 진행돼 구체적 과정을 의식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마음을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보호하는 것이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방어기제는 몇 가지 수준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병리적 방어기제로서 전환, 부정 등이 해당된다. 전환은 의식에서 거부된 정신적 내용이 신체적 현상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예로, 시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듣고 나서 화를 풀지 못한 며느리가 손에 마비증세가 오는 경우이다. 부정은 특정사건이 지닌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부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함으로써 불안이나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이다. 두 번째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로서 투사, 퇴행 등이 있다. 투사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나 생각을 외부세계로 옮기는 정신과정이다. 참을 수 없는 공격적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공격적 대우를 받는 것으로 인식한다. 퇴행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마주할 때보다 미성숙한 정신기능의 단계로 거슬러 되돌아가는 심리적 과정이다.
세 번째는 신경증적 방어기제로서 억압과 합리화가 있다. 억압은 의식으로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운 내용을 무의식 속에 가두는 것이다. 선택적 기억상실증이 해당된다. 합리화는 이솝우화 '여우와 포도'에 나온다. 포도따기를 포기한 여우가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저 포도는 시어서 먹지 못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방어기제의 예로서 이타주의와 유머 등이 있다.
지금 우리에겐 탈출구인 '엑시트'가 보이지 않을 만큼 힘들고 암울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곁의 작은 영웅들, 그리고 내 안의 작은 영웅이 필요하다. 그러한 영웅이 실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방역 현장의 헌신적인 공무원, 수많은 자원봉사자 그리고 그들을 글로, 마음으로 응원하는 우리들이 있다. 자신이 써야 할 아껴 놓은 마스크를, 필요한 생필품을, 먹을 음식을 코로나19 진료 현장에 보내는 소시민들, 필사의 사투를 벌이는 대구ㆍ경북 주민을 위해 아끼고 아끼며 부은 암보험 해약금을 주민센터에 기부한 어느 기초수급대상자의 이야기까지…. 모두 이타주의로 무장한 이 시대의 영웅이다. 이제 내 안의 영웅이 응답할 차례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https://www.asiae.co.kr/article/202003051122403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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